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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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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공예실_민속

도자기, 민속품 

민속공예실에서는 조선시대의 사랑방, 부엌, 안방으로 구성하여 민속품을 소개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명기(明器)과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비녀

  • 조회수 286
  • 작성자 박물관
  • 작성일 21.10.22

비녀(簪)

조선

  

비녀는 과거 여성들의 머리를 꾸미기 위한 장신구입니다. 비녀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선사시대로 당시에는 동물의 뿔을 이용하여 비녀를 제작하였습니다. 이후 삼국시대부터 금, 은과 같은 금속재료를 사용한 비녀들이 제작되었으며,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비녀의 모습도 화려하게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 영·정조 시기에는 가채의 사용을 금지시키는 발제개혁(髮制改革)이 이뤄지면서 머리의 형태가 얹은머리에서 쪽진머리로 변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쪽진머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녀가 필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비녀 사용이 일반화됨에 따라 비녀를 좀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해 다양한 보석을 장식하여 비녀의 모습을 부각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비녀는 신분에 따라 제작되는 재료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상류층의 경우 금, 은 진주, 비취, 산호 등 귀한 보석 또는 금속류를 사용하여 비녀를 제작하였습니다. 반면에 일반 서민층에서는 나무, 뿔, 백동, 놋쇠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바탕으로 비녀를 제작하였습니다. 

비녀는 머리 부분인 잠두(簪頭)의 형태에 따라서 종류도 다양하였는데, 동물 및 식물이 장식의 주요 대상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비녀로는 봉황잠(鳳凰簪), 용잠(龍簪), 원앙잠(鴛鴦簪), 수련잠(水蓮簪), 국화잠(菊花簪), 매죽잠(梅竹簪), 등이 있습니다. 또한, 잠두도 신분적 차이에 따라서 사용이 제한되기도 하는데, 용잠과 봉황잠은 최상위 계층인 왕비가 주로 사용하였으며, 서민들은 민자 비녀 또는 버섯 모양의 비녀를 착용하였습니다.

붓을 꽂을 수 있도록 만든 필통입니다. 대나무 두 개를 연결하고 바닥에 나무판을 대어 만들었습니다, 대나무의 몸통에는 화조문이 양각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