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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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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공예실_민속

도자기, 민속품 

민속공예실에서는 조선시대의 사랑방, 부엌, 안방으로 구성하여 민속품을 소개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명기(明器)과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안경(眼鏡)

  • 조회수 154
  • 작성자 박물관
  • 작성일 23.02.23


안경(眼鏡)

조선~근대, 길이 12.2cm  


 인간의 몸은 20세를 정점으로 서서히 완만하게 노화의 길을 걷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시력의 변화다. 마치 강속구 투수가 신체 능력이 떨어지면 기교파가 되듯이 팔다리나 내부 장기의 노화는 사회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 노동의 강도가 적은 일로 바꾼다거나, 여럿이 같이 한다거나. 그러나 눈은 다른 무엇보다 노쇠에 대한 타격이 크다. 아예 인간의 행동 자체를 제약하는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는데는 광학기술의 발전이 필수였다.

안경의 핵심인 렌즈는 대체적으로 아리비아에 영향을 받아 유럽에서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혹은 일본을 거쳐 임진왜란 전후로 이 땅에 상륙하였다고 추측하는데, 중국에서 전해진 이름을 따라 ‘애체’라고 불렀다.(이를 전파한 네덜란드 사람의 이름이라고도 한다) 현존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임진왜란 당시 외교와 왜적방어에 힘쓴 김성일(1538~1593)의 안경이다.

조선시대의 안경알, 즉 렌즈는 주로 경주에서 나는 수정을 주로 사용하였다. 남석이라고 불리는 이 수정을 손으로 갈아서 만들었고, 렌즈를 둘러싸는 테는 거북의 등껍질, 암소의 뿔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테에 실을 걸어 착용하였으나 점차 조선 후기를 지나며 현재의 단단한 안경다리를 가진 모양으로 정착되었다.  그래서 현재 남아있는 문헌기록이나 초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안경의 착용자는 모두 왕족이거나 양반신분에 속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오늘 소개할 유물인 안경은 조선시대에서도 상당히 후대의 것으로 명・청이나 조선에서 유행한 것과 달리 현대 안경과 많이 닮아있어서 최근 것으로 봐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세련된 형상이다. 그런데 안경 옆에는 종이 몸체에 표면을 마감처리한 상어 껍질을 덮은 안경집이 자리잡고 있다. 안경의 형상과 함께 그를 보호하는 안경집의 세련됨은 조선시대에도 안경이 실용적인 도구이면서도 착용자의 멋을 드러내는 패션아이템으로 사용되었음을 말해준다. 박인호(박물관 연구원)